도쿄에서 10년 살았던 관점
올해 6월, 일본 경제 미디어가 하나같이 주목한 뉴스가 있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의 아시아 순방 루트였다. 대만 약 2주, 한국 3박 4일, 그리고 중국. 일본은 없었다. 닛케이(日経)가 「日本を素通り(일본을 그냥 통과)」라고 표현한 이 사실이 일본 경제계에 꽤 강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나는 그 기사를 읽으면서 10년 넘게 일본에서 살았던 경험 상, 일본 미디어가 스스로를 비판하는 기사를 쓰는 경우는 드물다고 느껴왔는데, 이번만큼은 달랐다. 닛케이는 물론 다이아몬드 온라인까지 "왜 일본은 선택받지 못했나"를 꽤 솔직하게 분석했다. 일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悲報(비보)」라는 단어와 함께 이 소식이 퍼져나갔다.
■ 젠슨 황은 왜 한국과 대만에 갔나
이유는 단순하다. 엔비디아의 AI 반도체 공급망에서 대만과 한국이 차지하는 위치 때문이다. AI 칩을 실제로 설계·위탁생산하는 곳은 TSMC(대만), 그 안에 들어가는 HBM(고대역폭 메모리)을 공급하는 곳은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한국)다. 젠슨 황 입장에서 이들은 단순한 거래처가 아니라 사업의 생사를 함께하는 파트너다. AI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지금, 그 파트너를 직접 챙기러 간 것이다.
■ 일본은 왜 빠졌나 — 닛케이의 자성
닛케이가 쓴 분석이 인상적이었다. "일본은 반도체 장비·소재 분야에서 강점을 갖고 있지만, 엔비디아 공급망과 직접 연결된 기업이 없다." 그리고 한 문장을 더 달았다. "파트너로서의 매력이 한국·대만에 비해 떨어진다."
일본 언론이 스스로 이런 말을 하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다이아몬드 온라인은 더 직접적이었다. 엔비디아 입장에서 아시아를 세 가지로 분류한다고 설명했다. 대만 = 제조(TSMC), 한국 = 메모리(삼성·SK하이닉스), 중국 = 최대 고객시장. 일본은 이 세 범주 어디에도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쿄전자(TEL), 신에쓰화학, 쇼와덴코 같은 일본 소재·장비 기업들은 지금도 글로벌 점유율 1위 품목을 여럿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공급망의 부품'이지 '공급망의 주역'이 아니다. 젠슨 황이 직접 만나러 가는 파트너의 조건은 달랐다.
■ 도쿄에서 10년 살았던 경험으로 느낀 것
나는 이 기사들을 읽으며 솔직히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일본이 반도체 강국이라는 인식은 내가 처음 도쿄에 왔을 때도 있었고, 지금도 현지에서는 그런 자부심이 남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1980년대 일본은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 50%를 넘겼고, 도시바·NEC·히타치가 세계를 주름잡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 30년의 흐름은 달랐다. 한국과 대만이 메모리와 파운드리를 잡아나가는 동안, 일본은 소재·장비라는 '뒤에서 지원하는 포지션'으로 역할이 바뀌었다. 현장에서 일본 경제지를 오래 읽어온 사람으로서, 이 변화가 어제오늘 생긴 게 아님을 안다. 그리고 일본 사람들도 알고 있다. 다만, 이번처럼 이렇게 가시적으로 드러난 적이 많지 않았을 뿐이다.
젠슨 황이 한국에서 삼성·SK 총수들과 밥을 먹고 시구까지 하는 장면이 일본 커뮤니티에 돌아다닐 때, 일본인들이 어떤 표정으로 그걸 봤을지는 충분히 상상이 간다.
■ 한국 입장에서 이걸 어떻게 볼 것인가
한국 미디어는 이 이슈를 꽤 흥분해서 다뤘다. "일본이 패싱당했다"는 프레임이 많았는데, 솔직히 말하면 한국도 마음 놓을 상황은 아니다. 현재 한국이 주목받는 핵심은 SK하이닉스의 HBM 독주에 가깝다. 이 독주가 언제까지 유지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삼성전자는 HBM 경쟁에서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중국 메모리 업체들은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오히려 이번 젠슨 황의 행보가 던지는 질문은 이것이다. "AI 시대에 우리는 어떤 포지션에 있는가?" 지금은 메모리로 주목받지만, 다음 사이클에서도 같은 포지션일 거라는 보장은 없다. 한국이 메모리에서 AI 파운드리, 소프트웨어 생태계까지 확장할 수 있느냐가 이후 판의 결정 변수가 될 것이다.
■ 마치며
이 뉴스를 접하면서 느낀 건, 기술 패권 지도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는 것이다. 닛케이가 "일본의 AI 혁명 낙오 우려"를 직접 쓴 해가 2026년이라는 게, 10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AI 공급망은 누가 '만드냐'의 싸움에서, 이제 누가 '설계하고 소유하느냐'의 싸움으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 젠슨 황이 다음에 아시아를 돌 때 그 루트가 어떻게 달라질지를 보면, 그 시점의 AI 패권 지도가 보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아마 그 기사를 도쿄에서 읽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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